결혼식 초대장 역사
광고 사람들이 결혼 초대장을 보내기 시작한 이유와 그 이유를 궁금해 하신 적이 있나요?
사실 이 관습은 오래전 12세기, 당시에는 인쇄기가 발명되기도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 결혼식에 초대하는 방식은 100% 입소문이었습니다. 아는 사람만 초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당시 마을은 규모가 좀 작았기 때문에 아는 사람들이 많았을 테지만요. 그들은 도시의 거리를 걸으며 최대한 큰 소리로 결혼식을 알렸고,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은 누구나 자동으로 결혼식에 초대되었습니다. 당연히 그 당시 결혼식 비용은 지금처럼 많이 들지 않았습니다 결혼식청첩장.
대량 인쇄가 불가능했던 것 외에도, 중세 시대의 가장 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글을 읽을 줄 몰랐다는 점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수도사들은 결혼 발표를 위해 고용되었는데, 많은 단어를 쓰는 대신 가문의 문장을 새겨서 누가 결혼하는지 사람들에게 알렸습니다. 오늘날 많은 초대장에 가문 문장이나 문장이 많이 보이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가문 문장은 단순히 과시하거나 보기에 예쁘기 때문만이 아니라, 당시에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또한 중세 시대에는 발표가 사회적 지위를 드러내는 역할을 했는데, 주로 상류층에게만 전달되었기 때문입니다.
1600년대 초, 마침내 인쇄기가 등장하여 청첩장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잉크가 번지고 초대장으로 사용하기에 좋지 않았기 때문에 신문에 결혼 소식을 알리는 용도로만 사용되었습니다. 루트비히 폰 지겐은 1600년대 중반에 금속판 인쇄술을 개발하여 일반 서민들도 직접 청첩장을 보낼 수 있게 했습니다. 금속판 인쇄기는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커다란 고무 도장과 같습니다. 금속판 인쇄술의 단점은 잉크가 번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잉크 위에 티슈 페이퍼를 얹으면 번짐 현상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이렇게 하면 번짐 현상이 줄어들 뿐만 아니라 보기에도 좋습니다.
마침내 1900년대에 사람들이 직접 손으로 초대장을 만들기 시작하면서 결혼식 초대장을 대량으로 구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통 결혼식 몇 주 전에야 초대장을 우편으로 발송했습니다. 그래서 봉투를 두 개씩 사용하는 것이 등장했습니다. 말 운송이 너무 힘들어서 봉투를 하나만 넣으면 망가질 수 있었기 때문에 봉투를 두 개씩 사용했습니다.
이제 청첩장을 조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실지도 모릅니다. 클래식 청첩장의 작은 부분 하나하나에도 깊은 역사와 의미가 담겨 있다는 것을 깨닫고, 청첩장을 보내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더 이상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실 겁니다. 요즘에는 청첩장을 인쇄하여 아름다운 종이, 리본, 글씨체, 포장재에 담아 우편으로 보내실 수 있습니다.